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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수감시설 일러스트. /일러스트=DALL.E(AI 이미지 제작 프로그램)

2019년 초 어느 날 평안북도 도(都) 가무단 광장 앞에서 진행된 공개재판. 이날 신의주 특각(김정은 별장)으로 들어가는 전기선을 끊어 동(銅)을 밀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명(남4, 여1)의 주민들은 유기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이중 유일한 여성인 김모 씨는 15년형을 받아 신의주 백토리 교화소로 끌려갔다.

김 씨는 백토리 교화소 입소 초기에 가족 면회로 식재료와 생필품을 정기적으로 받으면서 그럭저럭 교화소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했고, 이로써 김 씨의 수감생활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그해 7월부터 백토리 교화소는 코로나 방역 규정을 준수한다는 명목에서 모든 교화인 가족 면회를 전면 중단시켰다. 외부로부터의 물품 반입도 역시 철저히 금지했다.

면식가루(속도전 가루)와 같은 식재료를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된 김 씨에게 주어진 급식은 썩은 옥수수밥과 절인 배추 삶은 국이 전부였다.

이때부터 김 씨를 비롯한 교화소 수감자들의 영양실조는 일상이 됐다. 수감자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쇠약해졌다. 본래 교화소는 영양실조 3도(1도=약, 2도=중, 3도=강) 상태에 이른 수감자들에게 병보석을 허용했지만, 코로나 국가방역 규정으로 인해 설령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렸더라도 교화소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백토리 교화소 교화과와 감방과 집계에 따르면 코로나 시기 100여 명(남성 60여 명, 여성 40여 명)의 수감자들이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사태는 김 씨를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았다. 오랜 기간 가족 면회를 하지 못해 생필품이 뚝 끊기자 그는 살아남기 위해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휴지가 없어 파고포(천)를 손바닥만 하게 찢어 사용하거나 그마저도 부족해 변을 물로 씻기 다반사였다. 물도 귀해 겨울에는 눈을 녹여 뒤를 닦았다.

특히 2022년 백토리 교화소에서는 소금이 금보다 귀하게 여겨졌다. 소금 한 숟갈이 지하족(천으로 된 작업 신발) 한 켤레와 맞바뀔 정도였다. 굶주림을 버티며 연명해야 하는 수감자들에게 소금만큼 필요한 것이 없었다. 수감자들은 소금을 얻기 위해 속옷까지 벗어 물물교환품으로 내놓았다. 이에 속내의 없이 추운 겨울을 버티다 쓰러지는 수감자들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김 씨 역시 소금 몇 알을 얻기 위해 속옷을 벗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 쓰러졌을 당시 그가 입고 있던 것은 달랑 겉옷 하나였다. 극심한 영양부족과 추위가 원인이었다. 특각 전기선을 끊어 동을 밀수했다는 것으로 교화소에 입소한 지 3년 만이었다.

‘교화소 내에서 형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 사망한 교화인의 시신은 교화소에서 자체적으로 소각 처리한다’는 북한 교화소의 오랜 규정에 따라 김 씨는 이름 모를 초야에 한 줌의 재로 뿌려졌다.

코로나 방역을 빌미로 한 교화소의 면회 중단 조치에서 비롯된 김 씨의 사망은 이듬해인 2023년 봄이 돼서야 교화소 안전원 가족, 출소자들을 통해 입소문으로 외부에 알려졌다.

방역을 이유로 비위생적인, 비인간적인 환경에 놓여야만 했던 김 씨와 같은 수감자들의 사망은 코로나 시기 북한 교화소의 열악한 실태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가 끝이 났듯, 교화소 수감자들의 비극도 끝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