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가을, 중국에 파견돼 다롄(大連)에 있는 수산물 가공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북한 노동자 영희(가명, 20대)에게 중국인 중간 관리자가 다가와 은밀하게 속삭였다.
“영희씨, 여기서 이렇게 고생만 할 게 아니라 내가 아는 시골 친척 집에 가서 잠시 숨어있으면 어때? 그 친척이 조선(북한) 여자를 색시로 얻고 싶어 해. 아이만 하나 낳아주면 8만 위안을 줄 거야. 그 돈으로 조선에 바로 돌아가서 잠깐 감옥 들어갔다 나오면 지금같이 고생하지 않고 잘살 수 있어. 잘 생각해 보고 아무 때나 찾아와.”
영희는 순간적으로 마음이 흔들렸다. 코로나 창궐 후 공장에서의 생활 여건은 날이 갈수록 열악해져 갔고, 공장 일감마저 줄어들면서 돈도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루 13시간 이상 고된 노동을 하더라도 차라리 돈을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21년 여름, 영희에게 코로나 증상이 나타났다. 임시 진료소에서 간단한 진료를 받긴 했지만 충분한 약 처방과 치료는 이뤄지지 않았다. 영양실조로 면역력이 약해진 영희는 여러 번 쓰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에 갈 돈이 없어 치료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작업반에서도 돈을 모아 병원에 보내줄 형편이 아니어서 그는 그저 힘겹게 아픔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즈음 북한에 있는 가족과의 연락도 끊기면서 영희는 점점 더 절망에 빠졌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컸지만, 그보다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돈을 벌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결국 영희는 도망칠 결심을 하게 됐다. 중국인 중간 관리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몰래 공장에서 빠져나가 중국인에게 시집가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현장 이탈 계획은 같은 작업반의 다른 북한 여성 노동자에게 모두 들통나고 말았다. 이 사실은 그대로 상부에 보고됐고, 그렇게 영희는 공장 내 좁은 공간에 감금됐다.
2023년 가을, 영희는 북한으로 송환됐다. 그는 송환 후 조사받는 과정에서 “나처럼 탈출해 중국에 숨어들려는 여성 노동자들이 많았다”고 했다가 도리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됐고, 실제 그는 ‘49호 대상’으로 분류돼 정신병원에 보내졌다.
영희의 이야기는 중국에 파견된 북한 여성 노동자들이 코로나 기간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코로나는 끝났지만, 중국에 파견된 북한 여성 노동자들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며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탈출을 꿈꾸는 북한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 그러다 발각되면 감금, 처벌받고 심지어 정신이상자로 분류되기까지 하는 북한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에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또 다른 영희들의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