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수산공장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벌어들인 임금의 80~90%를 국가에 강제 상납하고 10~20%만 생활비로 지급 받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실상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수산물은 미국·캐나다·스페인뿐만 아니라 한국의 30여 개 업체를 통해 국내에도 유통돼 대형마트·수산시장에서 판매된 것으로 파악됐다.
데일리NK AND센터는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간담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중국 수산공장 북한 노동자 강제노동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보고서는 북한의 외화벌이 실태와 대북 제재를 우회하는 글로벌 공급망의 허점을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들은 파견 전부터 간부에게 거액의 뇌물을 바쳐야 하며,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생활평정서 발급을 대가로 성적인 수모까지 견뎌야 했다. 이는 노동자 파견이 ‘자발적 계약’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고서는 이를 계약이 아닌 ‘구조적 착취’라고 규정했다.
보고서는 파견 노동자들이 중국 현지에 도착한 이후로 인권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고 지적했다. 도착 즉시 여권을 관리자에게 압수당하며, 공장 내 숙소에서 24시간 교대 감시를 받고, 외출이 엄격히 통제돼 외부와의 접촉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노동자들은 하루 12~14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과 일상적인 폭언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시도하다 적발되면 심각한 처벌을 받거나 강제 송환된 뒤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는 실종 상태에 빠지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북한 파견 노동자들이 노동을 거부할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정의하는 강제노동의 핵심 요건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핵심적인 부분은 정교하게 설계된 임금 착취 구조라고 보고서는 꼬집었다. 중국 수산공장이 지급하는 임금은 노동자 개인 계좌가 아닌 북한 당국이 지정한 계좌로 일괄 송금되고, 이후 임금 분배는 북한 당국이 전적으로 통제한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수산공장과 계약된 임금의 10~20% 수준만 생활비 명목으로 수령하며, 나머지는 모두 북한 당국에 의해 회수된다. 이와 관련해 한 북한 간부는 “수익의 대부분은 (북한) 수산성으로 송금된다”고 증언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러한 방식은 대북 제재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 제2397호를 통해 북한 국적자의 해외 고용을 금지하고 2019년 12월까지 전원 송환하도록 명시했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노동력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고, 이 외화가 체제 유지 자금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무력화되는 상황이다.
특히 북한 파견 노동자들의 강제노동에 기반한 수산물이 전 세계 소비자들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대두된다. 북한 노동력이 투입된 수산물은 중국산이라는 원산지 표기로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돼 유통되고 있고, 많은 기업이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강제노동과 인권침해에 연루되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 사이 약 4360톤의 수산물이 이러한 방식으로 한국의 36개 업체로 유통됐다. 주요 품목은 명태, 연어, 바지락 등으로, 전국의 대형마트와 수산시장에서 판매됐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스페인 등 여러 국가에도 북한 파견 노동자들이 관여한 생산물이 유통돼 글로벌 공급망 전체가 북한의 강제노동, 인권침해 문제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보고서는 노동력 송출을 직접 기획하고 임금을 착취하는 시스템의 설계자로서 우선 북한 당국이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이 노동자를 외화벌이 수단으로만 취급하며, 인권 보호에 대한 의무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보고서는 이 같은 시스템이 유지되도록 방조하고 있는 중국 정부의 책임도 크다고 짚었다. 중국이 자국 영토 내에서 벌어지는 명백한 인권침해 행위를 사실상 방조하고 있으며,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국으로서 마땅히 져야 할 ‘보호 및 감독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보고서는 수산공장의 생산물을 수입하는 기업과 유통사들 역시 공급망에 대한 실질적인 인권 실사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황현욱 AND센터 책임연구원은 “북한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강제노동 문제는 국제법과 결의가 무시되는 가운데 지금 현재도 이뤄지고 있으며, 특정 국가의 인권 문제를 넘어 우리의 일상과도 직결돼 있다”며 “강제노동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실효성 있는 제재 이행, 기업의 공급망 인권 실사 의무화, 시민사회의 윤리적 소비 운동 등이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