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유엔이 북한의 강제실종을 반인도범죄로 공식 규정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책임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정치적 의지 부재’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은 17일 발표한 ‘북한 강제실종범죄의 조사기록과 책임규명: 이행 점검과 권고사항’ 보고서를 통해 지난 10년간 축적된 조사기록과 국제 애드보커시 성과를 점검하고 책임규명을 위한 국내외 정책을 권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TJWG가 구축한 ‘풋프린츠(FOOTPRINTS)’ 데이터베이스에는 총 9만 6910명의 강제실종 피해 사례가 기록됐다.
지난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북한의 강제실종이 정치범수용소 내부에서 그리고 탈북 난민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자행되고 있어 반인도범죄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 로마규정에 따르면 반인도범죄는 ‘민간인 주민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의 일부로서’ 자행되는 비인도적 행위로 정의된다.
보고서는 이처럼 범죄의 실체와 법적 근거가 명확함에도 책임규명이 공전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관료적·정치적 관성’이 핵심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 부처 간 정보 칸막이가 대표적인 ‘관료적 관성’의 증상으로, 국가정보원은 핵심 자료를 독점하고, 통일부와 법무부 기록보존소는 원활한 정보 공유를 하지 못하는 등 각 부처가 협력보다 관할권 다툼 또는 경쟁 행태를 보여왔다는 것이다.
또한 보고서는 2014년 COI가 중국의 방조 책임을 직접 제기하며 보여준 정치적 독립성과 달리, 지난 10년간 국제사회의 대응이 점차 미온적으로 변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정치적 무력감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중·러의 거부권 행사 우려로 표적 제재조차 시도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졌고, 최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책임규명 프로젝트마저 중국을 명시적으로 비판하지 못하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데서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TJWG는 보고서의 목표가 이러한 관성을 타파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하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애드보커시 전략을 제시했다.
우선 한국 정부에는 일본의 ‘납치문제대책본부’를 모델로 한 대통령 직속 범부처 기구를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파편화된 정부의 반인도범죄 대응 역량을 한곳으로 모아 관료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정부가 보유한 북한 내부 문건을 전략적으로 기밀 해제하고, 유엔 무대에서 더 이상 ‘제3국’과 같은 외교적 수사를 버리고 중국의 책임을 명시적으로 제기함으로써 ‘정치적 관성’을 깨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국제사회를 향해서는 개별 국가들이 보편적 관할권 원칙에 따라 가해자를 기소하고, 북한 인권침해 책임자에 대한 마그니츠키 제재(중대한 인권침해에 책임 있는 개인과 기관을 표적 제재)를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면서 강제노동 연계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등 실질적인 압박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나아가 유엔 기구에는 보다 과감하고 투명한 역할을 주문했다. 유엔 안보리에는 중·러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북한 ICC 회부 안건을 표결에 부칠 것을, 인권이사회와 총회에는 억류자 개인의 이름을 명시해 결의안의 실효성을 높일 것을 권고했다.
특히 보고서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와 난민최고대표사무소(UNHCR)가 중국의 역할을 더 이상 묵인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명시적으로 책임을 묻고 투명하게 대응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보고서는 “조사기록과 책임규명 프로젝트를 그저 학문적 관심사가 아닌 더 넓은 애드보커시 전략의 필수 요소로 인식하고 실행한다”며 “지난 10년간 축적된 진실을 이제는 실질적인 ‘정치적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